회화에는 '말하여 진 채, 말하지 않는(die sagende Nichtsagen)' 그리고 '말하지 않은 채, 말하는' 감각이 있다. 회화는 단순히 철학의 관념에 바쳐진 수단이 아니다.
"예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은 온전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단지 '존재에 대한 물음'(die Frage nach dem Sein)에서 부터 규정될 일" 하이데거가 말한 것의 의미는 철학의 진리를 회화가 현존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화가 진리이고 철학적 관념이 현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를 보고 이렇게 기술한다.
"낡은 구두(도구)의 어두운 내부가 드러나는 '구멍'(die Öffnung)으로 부터 노동의 고단함이 배어나오고, 구두의 만만치 않은 중량에는 널따란 밭고랑을 느릿느릿 끈기 있게 누볐던 발걸음이 켜켜이 배어 있다. '대지'의 습기와 풍요를 머금고 있는 가죽 아래의 밑창에선 해질녁 들길의 아뜩한 정적이 묻어난다. ' 대지'(die Erde)의 '소리 없는 부름'(der verschwiegene Zuruf), 잘 익은 곡식을 내주는 대지의 '증여'(das Verschenken), 황량한 겨울들판에서 피어나는 대지의 수수깨끼 같은 '자기 거절'(das Sichversagen)이 구두 안에서 진동하고 있다. 양식을 걱정하는 불평없는 근심, 궁핍을 넘겼을 때마다 찾아왔던 말없는 '환회'(die Freude), 임박한 출산에 대한 초조함, 그리고 엄습하는 '죽음의 위협'(die Umdrohung des Todes)앞에서의 전율이 구두에 뒤엉켜 스며있다."
하이데거를 통해,
존재(세계를 담은)가 존재자(구두)의 모습으로 계시를 드러내며,
진리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그림에서, 그림이 진리라고 표명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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