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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Lesen

카프카, 최선의 불안을 안고 죽음을 몰아부침.

카프카에게 '유형지에서'는 유일하게 프라하를 떠나

한차례의  공개낭독(Abend Für Neue Literatur '새로운 문학의 밤'에서) 할 만큼,

각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개 낭독 다음날 1916년 11월 11자 Müncher Neueste Nachrichten에서

기술적인 재능은 인정하나, 기자나 청중들에게 협오감을 느끼게 했다고 전한다.

 

그건 비평일 뿐이고,

그는 1924년 10월 7일자 일기에 '14일 간의 훌륭한 작업(Vierzhen Tage gute Arbeit...)'라 전한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서,

가장 애정하는 작업물은 설 자리가 없었다.

 

1. 뾰족한 나막신을 신고 중심잡기

 

'유형지에서' 여행자는 장교뿐만 아니라, 사병과 죄수와도 존립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여러 논문은 장교와 여행자의 갈등을

유럽과 비유럽의 갈등으로 주로 풀어나가는 데,

이건 유럽에서 작성된 기존 것들을 참조하는 데 기인한 것 같다.

 

그러나 유럽과 비유럽의 갈등 중심으로 본다면,

사병과 죄수와의 갈등은 이해할 수 없다.

유럽과 비유럽, 삶과 죽음, 법에 대한 필요와 불필요에 대한 사이에서 

그의 작품들은 이해 될 수 있다.

 

'유형지에서' 유럽과 비유럽, '변신'에서 인간과 동물,

'시골의사'에서 의사와 마부, '선고'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구분되어지지 않는다.

경계지대에서 함께 이야기 되어 진다.

 

1921년 10월 29일 그의 일기

고독과 공동사회의 경계지대에서, 나는 거의 밖에서 넘어선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나는  고독 그 자체의 내부보다는 이 경계지대에 보다 많이 정착해 있었다.

"Dises Grenzland zwischen Einsamkeit und Gemeinsamkeit habe ich nur äußer selten überschritten, ich habe mich daran sogar mehr angesiedelt als der Einsamkeit seblst"

 

2. 작두같은 경계지대 ; 아르키메데스의 점.

 

협오스러울 정도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고민은 

다른 사람에게과  보이지 않은,

아주 좁디 좁은 경계지대를 만들어가고 결국 추상적인 점이 되어버린다.

 

그 점은 카프카에게는 '아르키메데스의 점'과 같다.

아르키메데스가 상상한 가상의 점은, 지구밖에 공간에 하나의 점이 있다면, 지렛대로 지구를 움직일 수 있다.

누구든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면을 고려한다면,

고립된 아르키데데스 점으로 이 사회를 바꿀수 있는 것이다(W Emrich).

(Erst im isolierten archimedischen Punkt... diese Geselschaft selbt aus den Angeln zu haben)

 

하지만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 일상을 벗어난 작가로서 장소는,

아르키메데스의 점처럼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설 자리를 찾을 수 없다. 설 곳이 없다.

익사형을 선고한다(Ich verurteile dich jetzt zum Tode des Ertrinkens'선고에서')

아버지의 선고로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넵. 하고 바로 뛰어나간다. 축하해 카프카...

 

3. 죽음에 대한 신뢰

 

죽음은 불안과 형이상학의 시작이다.

그러나 죽음으로서 불안은 종결된다(Mein Wesen ; Angst, 나의 본질은 불안이다)

 

2017년 9월 28일자 일기

죽음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념의 나머지, 아버지에로의 재귀, 커다란 화해의 날

 

Dem Tod also würde ich mich anvertrauen,

Reit eines Glaubens, Rückkehr zum Vater.

Großer Versöhnnungs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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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 비일상을 통한 의미의 다양성 확보.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 빙산처럼 짧게 쓴다.

"Nach diesen Geschiten versucht Gott Abraham, und sprach zu ihm : Abraham! Und er antwortete: Hier bin ich!

(이 이야기가 끝난 후, 아브라함을 찾고(시험하고) 말한다. 아브라함! 저 여기 있어요! 아브라함 대답한다)"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어디에서 왔고, 하느님은 어디에서 말하고, 모습은 어떤지 알 수 없다.

 

'유형지에서' 죄수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어떤 형벌을 받게 될 런지 알 수 없고,

'선고'에서 아버지가 어떻게 친구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지, 왜 죽어야하는 지 이삭처럼 게오르크도 알지 못한다.

'변신'에서 왜 벌레가 되었는지, 어떤 벌레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카프카의 작품은 프로이드식으로, 실존주의 철학으로, 불안으로,

창조적인 유대교(시키지도 않는데 스스로 죽는 이삭의 모습)등으로

다양하게 정리되어진다.

 

자신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

다양한 해석 중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야 한다.

 

삶의 의미는 자기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 이외에 뭐 있나?

죽을 때까지 불안해 하면서.... ㅋㅋㅋ

 

참조 :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연구

F. Kafka의 'Das Urteil'에 나타난 주인공의 갈등과 죽음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