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야기
아버지는 오하이오에서 농사 일꾼으로 일을 했었다. 토요일 저녁에 농장 일꾼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면 행복한 사람이었다. 출세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35세가 될 때, 교사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36세에 나를 낳자 출세하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는 어머니의 영향이었으며, 어머니는 내가 출세하는 꿈을 꾸었을 듯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양계장을 하도록 한다.
양계장에서 어린 시설을 보내는 나에게 우울함이 있다면, 양계장에서의 보낸 시절로 인한 것이다. 닭들은 병아리 때 섬뜩할 정도로 털이 빠지다가, 멍청히 해를 보다가 죽어갔다. 그 와중에도 몇 마리의 닭들이 살아남아, 악순환을 유지하였다. 병아리들은 어이없이 마차 바퀴 아래에 들어가 죽거나, 해충이 들끓었다. 몇 마리 안 되는 암탉으로 재산을 모은다는 글은 허황된 거짓이다. 세상이 점점 나아진다거나, 선이 악을 이긴다고 차라리 믿는 편이 낫다.
부모님은 양계장을 위한 분투를 그만두고, 요식업을 하기로 한다. 나름 사랑스러운 암탉이 죽은 암탉으로 변해가는 모습으로 더 이상 골머리를 썩힐 수 없었다. 다시 출세를 위해 길을 나선다. 마차 꼭대기의 앉은 아버지의 머리는 닭의 털처럼 빠져있다. 나는 닭과 달걀이 없는 꿈을 꾼다.
아버지의 가장 큰 보물은 기형으로 태어나 괴물처럼 보이는 병아리이다. 아버지는 그 기형 병아리를 살려서, 한 몫 챙기는 꿈을 꾼다. 아버지는 알코올에 담긴 기형 병아리를 카운터 선반 뒤쪽에 놓아두었다.
식당은 읍내에서 1.6km 북쪽 떨어진 역사 건너편에 있었다. 어머니늘 역 주변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커피나 요깃거리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지만, 내가 읍내에서 학교를 다니고 도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부모님은 식당에서도 열심이었다. "식사는 여기서 하시오"라는 명령형의 간판을 달았으나, 복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야간에 선로 변경으로 인한 인부들을 위해, 야간에도 운영하면서 식당과 하숙업을 병행하기로 한다. 야간에 식당을 지키던 아버지는 남는 시간에 미국적 정신에 사로잡혀, 쾌활하게 살아가기로 한다. 아버지는 식당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를 즐길 것이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행복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들어올 것이라 상상한다. "걔들은 어딘가 갈 곳를 원해" 아버지는 계속 되풀이하여 이야기하였다.
아버지의 변화는 가족 모두가 웃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그러나 달걀 하나가 아버지의 새로운 충동을 망쳐놓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달걀 하나를 들고 울부짖으며,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덜 빠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날 아래층에서는 조 케인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기다리기 위해, 미안한 마음에 커피를 시켰다. 그런 손님 앞에서 아버지는 콜럼버스의 표리 부동함에 분노하며, 자신이 달걀을 깨지 않고 세울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어렵사리 달걀을 순간 세웠으나, 손님에게 보려 주기 전에 이미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당황한 아버지는 기형 닭을 손님에게 보여준다. 손님은 기괴한 모습에 나가려고 한다. 아버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조 케인을 다시 앉게 한다. 그리고는 세 번째 달걀을 좁은 목을 가진 병에 집어넣는 쇼를 시작한다. 조 케인은 아버지가 이상하지만 악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달걀을 집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아버지 손에서 깨진다. 조 케인은 문 앞을 나서며, 그 모습을 보고 웃는다.
아버지는 분노로 울부짖었고, 달걀을 존 케인에게 던졌다. 아버지는 달걀이라는 달걀을 모조리 깨뜨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 달걀을 가만히 탁자에 내려두었다.
나는 왜 달걀이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달걀에서 다시 달걀을 낳는 암탉이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의문은 내 핏속에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미해결 의문이야말로 달걀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일 뿐이다.
2. 사족
1) 달걀
달걀은 생명이며, 성장의 씨앗이지만, 깨지기 쉽고, 혼자 서 있기 조차 힘들며, 병 속에 담아두기도 힘들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쉽게 포기하며, 이제는 해마다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의미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올해는 무슨 계획이 있냐라는 질문에 대답 거리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낸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이젠 계획 따윈 세우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새 공책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새해 첫날을 정성스럽게 보낸다. 우리의 미덥지 못한 꿈같은 계획은 언제나 악순환처럼 새롭게 부활한다. 달걀의 승리이다.
2) the grothesque
희망을 향한 노력은 기괴한 모습으로 현현된다. 그 모습은 기괴하지만, 아버지의 대머리처럼 만지면 만질수록 아련해진다. 아버지의 울부짖음, 장인어른의 굽어진 등, 아내의 갈라진 손, 어머니의 조울증, 나의 우울함, 내 오른쪽 아킬레스 근염은 어린 여자 아이돌의 얼굴보다 조금은 더 긴 수명과 더 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기괴하게 된 것은 평범하게 성장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살아남기 위한 변화와 방법이다. 사회복지에서 인간 행동과 사회 환경이라는 과목의 주제와 유사하다.
3) Death In The Woods와 연계
(1) 구체성과 보편성 : 식구들은 이름조차 없다.
이야기는 오하이오 안에 양계장의 크기, 읍내 이름, 기차역 이름, 구체적인 거리, 농장 주인 이름, 손님 이름 등 어느 미국 시골마을을 특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나는 현재의 나도 아니고, 과거의 나이며 이름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뿌연 희망을 가지고, 달려만 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Death In The Woods의 할머니는 이름이 없어서, 사라질 존재이며, 어디에서가 본 듯한 우리의 할머니가 될 수 있었다. The Egg의 가족은 이름이 없어서 독자 전체를 아버지로, 어머니로, 나로 끌어들인다. 구체적으로 목격한 둣 한 개별적인 것, 보편적인 삶을 가지게 된다.
(2) 보지 않았지만 본 듯한 상황
Death in the Woods 보지 않았던 소년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소녀의 죽음으로 창작되었듯이, 나의 출생과 함께 시작된 비극과 1층에서 일어나 사건은 보지 않았지만 새롭게 보여진다.
(3) 동네 이야기 : 자신의 이야기
My own vocabulary was small... no Latin, no Greek, no French... I had to do it with my own very limited vacabulary.
But should I use in my writhing word that were not a part of my own everyday speech, of my own everyday thought? I did not think so.
... There was the language of the streets, of American towns and cities, the language of the factories and warehouses where I had worked, of laborers' rooming house, the saloons, the farm.
It is my own language...
앤더슨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로 담담하지만 새롭게 글을 써 간다.
4) 이야기의 확대과 깊이
이야기는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부부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마을로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출세에 대한 욕심도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까지 번져간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미국적 정신에 대한 의구심은 커져간다. 알면 알 수록 확실했던 것은 흐려져가고 왜 왔는지도 모르겠다.
5) 아버지는 닭이다.
끔찍하게 벗겨진 털, 멍하니 바라보는 하늘, 기괴한 모양의 기형 닭과 같은 행동, 타인(부인, 자식, 손님)의 속내를 모르는 아버지는 American Dream의 허상을 쫒는 닭이다.
6) 수동태와 결정론
주요한 사건의 전환을 맞는 문장은 수동태이다. 이로서 변화와 성장, 계기는 의도치 않게 벌어짐을 알 수 있다. 어떤 경제학은 철학보다 더 뻥이 심해서, calculated risk라는 말로 학생들을 좀 더 빠르게 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calculated 된 것은 매우 적고, 예상지 못한 상황에 언제나 처해진다. 계획된 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다.
3. 결론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며,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지 말고 지속해야 한다. 특히 타인을 살피면(Social Value를 추구하다 보면), 자신의 이익(Economic Value)이 찾아올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주어진 환경에서 좀 더 타인을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한 발짝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야 달걀이 깨지지 않는다. 뭐 달걀 따위 없이 살아도, 죽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달걀 曰 "걔들은 어딘가 갈 곳를 원해"
참고 : youtu.be/8ortHFhsB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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