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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Lesen/Fitzgerald

The Great Gatsby(1925), F Scott Fitgerald

1. 이야기

 

황금 모자를 쓰려무나,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1) 겨울 꿈을 이어 우월감에 빠지지 말 것이라는 충고로 시작된다. 캐츠비 예민한 사람이며,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닉이 월가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캐츠비의 옆집으로 이사 온다. 

미친 시대, 주식의 폭등으로 한달간 노는 부유층들이 넘치고 프랑스 흉내 내는 건물양식이 부유층의 상징이었다.

닉은 데이지의 외로움을, 톰의 방탕함을, 캐츠비의 경건함을 느끼고 있다.

 

2) 재의 골자기의 에클버그 의사의 두 눈이 지켜보고 있다. 

닉은 톰의 여자친구를 억지로 만나게 하고, 그녀는 남편만 모르게 톰을 만나고 있다. 

그녀의 아파트에서 톰이 여자 친구 머틀을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두들겨 팬다.

 

3) 캐츠비의 초대장을 받은 닉은 파티 참여하고, 데이지의 지인인 조던을 만난다. 조던은 캐츠비의 부름을 받는다. 캐츠비의 비밀을 조던을 알게 된다.

 

4) 케츠비의 의도로 닉은 자동차로 점심 먹으러 뉴욕에 간다. 우연히 만난 톰을 보고 캐츠비는  조던을 통해 진실이라 여겨지는 것이 밝혀진다.

 

5) 닉의 데이지의 초대로 캐츠비와의 만나게 된다. 

 

6) 제임스 캐츠의 과거를 들추어내고, 톰과의 캐츠비의 정식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지난 5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

 

7) 데이지는 상황을 말하지 못하고, 캐츠비와 톰의 갈등은 고조된다. 머튼 윌슨은 톰으로 착각하여 데이지가 운전하는 차에 사망한다. 톰은 머튼을 모르는 사람이라 하고, 데이지는 자신이 운전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8) 지나간 과거가 흘러간다. 과거가 다 지나갈 때 쯤, 캐츠비는 살해된다.

 

9) 캐츠비의 장례식, 친구들은 사라지고 없다.

 

2. 의미들

 

1) 데이지 XXX 년

 

그녀의 사랑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임.

부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부 예정설을 믿는 청교도들.

플래터 원조녀로 캐츠비를 초반부터 농락하고 정신적으로는 톰보다 더 더러운 X임.

톰과의 담판에서도 위험한 캐츠비를 버리며,

마지막에도 자신의 운전을 숨김. 결국 캐츠비를 죽음으로 몰아넣음.

 

플래터는 무슨... 개 ㅆ년

 

오픈된 안에서 모두가 착한 척, 조금이라도 모난 돌은 깨짐. 

 

2)  이상국가는 없음.

 

재로 뒤덮인 황무지(T.S 엘리엇)에 아내의 외도도 모르고 살다가

살인이나 저지르는 사람들의 땅 

 

이상적인 자유 국가는 말 뿐이고,

American Dream의 원천은 피를 묻힌 전쟁을 통한 부임.

황금은 자유정신에서 녹색 종이로 변질을 이끌음.

 

보스를 통해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 생각하는 캐츠비는

꿈을 향해 나아가지만, 톰을 통해 지적받은 바 같이 과오 덩어리임. 

Green Light는 없음.

 

3) 번역가와 독자의 아비투스

 

유튜브의 책 읽어주는 여자에서 보는 캐츠비와

책에서 보는 캐츠비는 다른 책이었음.

 

유튜브의 책 내용은 순수 로맨스,

읽은 책은 보여주기, 말하기, 충고하기가 교묘하게 숨어 있어, 시간이 걸림.

 

영화는 보여주기 중심으로 빠르게 이야기함으로써 관객 모독

 

충실성과 독창성, 번역가와 독자 간의 아비투스에 따라 

청년층에는 로맨스 소설이 되기도 하고(승리가 캐츠비를 감명 깊게 읽었다지) 

숨겨진 걸 찾다 보면 로맨스는 개뿔 사회비판 글로만 읽힘.

 

해석은 독자에게 남기겠다는 말은 졸라 무책임하고,

번역가는 어떤 의도로 번역했음을 남겨야 책값 안 아까울 듯함.

책도 안 사지만

 

3. 결론

 

종교를 까고, 국가 이상을 깨고, 청순녀를 깨면서 겉으로는 로맨스를 보여줌.

청순녀를 깨는 건 좀 아쉽지만, 사실인 걸 어떻게 바꿈?

 

캐츠비의 사후 지인의 무관심은 물질에 집중하였기 때문임.

꿈과 희망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저항 소설로 읽힘.

 

PS

서울, 1964년 겨울

 

우리 사회도 물질에 집중하기 때문에 서울의 겨울은 언제나 추음.

사람의 온기는 변태짓을 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정도임.

겨우 25살밖에 되지 않은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은 없음.

 

미국 놈들이 상류층이 깨지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것은,

실제 상류층이 무너지는 것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고,

 

우리가 상류층이 깨지는 것을 희열을 못 느끼는 것은,

잘 사는 넘들이 무너지는 걸 소설로도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함. ㅋㅋㅋ

 

몇 가지 논문 훅 둘러봄. ^^;;;

젤 재미있는 논문은

수용이론에 기반한『위대한 개츠비』번역사례 연구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