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 Lesen/japan

플랜든 농업학교의 돼지(1926), 미야자와 겐지

맑은 여름하늘 2020. 12. 25. 02:32

1. 이야기

 

'금속과 돌 이외에 모든 것을 잘 섭취해서 지방과 단백질을 만들어 체내에 축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돼지는 무기물의 백금처럼, 촉매와 같은 존재이다. 돼지는 단순하게 백금과 비교하여 자신이 60만 엔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겐지는 글로 평생 5엔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떨어진 음식에서 이쑤시개를 발견한 돼지는 어질어질하고 메스꺼움을 느끼고, 잠이 든다.

 다음 날 돼지는 조금 기분이 나아지긴 했으나, 투명한 회색 기분이다. 돼지 기분을 알려면 돼지가 되어보는 수밖에 없다. 축산학 교수는 하늘색이며, 북극 하늘 같은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가 돼지우리에 암막을 치고, 비육을 위해 아마인을 먹인다. 

도축하기 한 달 전 '가축도살동의조인법'이 발효된다. 교장이 사망승낙서를 가져왔고, 쓴웃음을 지으며 '뭐, 날씨는...'이라는 말과 눈빛에 너무 우울해진다. 그날 교장은 지장날인을 포기하고, 축산학과 교수를 통해 그 날을 듣게 된다. 이제 돼지는 괴로워서 잠도 못 이루게 된다. 기숙사 학생들이 히죽거리며, 파, 감자 서말, 한 치 두께의 외투 등을 뇌까린다. 교장은 모든 생명이 죽는다와 은혜를 베풀었다는 논리로 도축을 쉽게 내뱉는다. 그러나 돼지는 먹은 음식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싫다고 이야기 하지만 개나 고양이 만도 못한 자신의 삶에 비관한다.

 교수가 다시 찾아와 여윈 돼지를 바라보면서, 다시 비육을 위한 산책을 지시한다. 조수는 회초리를 휘둘르고, 산책을 위한 회초리가 어떤 기분인지는 돼지가 되지 못한다면 알 수 없다. 산책을 하며 조수는 It's long way to Tipperary를 부른다. 이 곡은 1차 세계대전에 연합국과 독일에서 불리던 노래이다. 아일랜드 촌놈이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갈 수 없다. 가사는 우울하지만 곡조는 메이저로 신나고, 피할 수 없는 괴로운 상황인데, 비트는 빠르다. 비극의 아이러니, 양배추를 먹으니 조수는 다시 노래를 부르며 사라진다.

플랜든 돼지와 같은 비좁은 잠수함에서 프로파간다를 거부하며 위해 부르는 Tipperary. 이곡은 위대한 환상에서도 사용된다.

돼지가 더 이상 살이 오르지 않자, 비육기를 사용하기로 한다. 그리고 교장의 겁박으로 승낙서에 지장을 찍고 만다. 지장을 찍자마자 묶이게 되고, 강제 비육을 당하게 된다. 학생들은 돼지를 무게와 비중으로 대하고, 이레 날 강제 비육을 멈추고, 일요일 교회 가듯 깨끗하게 씻는다. The red pony에 나온 삼나무에서 돼지는 도축당한다.

하얀 눈 속, 전장의 이름 없는 병사처럼 쌓여 있는 눈 속에 겹겹이 묻혔다. 

 

 

2. 살아있음과 죽음

돼지는 백금과 같은 촉매처럼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체내에 축적하는 돼지는 이쑤시개로 구역질 나는 자신의 삶을 깨닫게 된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게 되는 순간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알게 된다. 살아있음은 지배계층이 던지는 음식으로 고통이 되며, 끝을 모르는 피지배계층은 불안한 삶이 유지된다. 불안감은 늘 떠나지 않는 죽음이 된다. 

 

'삼나무들이 항상 내 머리속을 차지하고 있다.' 1889년 7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

 

3. 음식

미야자와 겐지네 동네는 삶이 넉넉지 않은 동네이었다.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먹을 것이 생겨났으나,  먹을 것이 있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센과 치히로의 전철장면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 밤의 오마쥬라 하니, 이 장면도 그러하리라고 추정 ㅋㅋㅋ 아마 회초리로 맞지?

 

타인의 고통을 통한 부의 축적, 소득격차의 심화 속에서 계층은 분명해져 간다.

음식을 주는 계층과 받아먹는 계층이 나뉜다. 그러나 주어지는 음식은 비위 상하는이쑤시개, 비육을 위한 아마인과 산책 후 양배추가 포함된다. 그 음식을 받아먹는 순간, 잡아 먹히는 가축이 된다.

그러나 음식은 생존의 기반이며, 그리움의 대상이다. 할머니께서 아궁이 앞에서 구워주신 가래떡이 그러하다.

 

 

4. 결론

 

돼지는 스스로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피지배계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본주의를 통해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구분하지 못하는 탐욕스러운 인간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요즘 뜨는 생태론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을 벗어난 돼지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좋은 예술은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것이라 하였다. 미야자와 겐지는 말랑말랑한 동화에 무겁고 쓴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먹을 때 주는 쾌락보다, 몸에 단백질과 지방을 축적할 수 있는 영양가 있는 그런 음식을 만들었다.

 

본생경에 돼지의 도축은 희생이지만, 겐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이브이니까.....

족발 먹고 싶다. ㅋㅋㅋㅋ

 

참고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동화 연구 : 음식물의 의미 표상을 중심으로

미야자와 켄지의 동화와 본생경-동물 우화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