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n Burning(1939), Sarty와 동반 출가
「Barn Burning」은 아버지 Abner가 지주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이를 지켜보는 Sarty의 성장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Abner의 폭력과 그를 중심으로 한 계층 간 갈등,
가족이라는 굴레에 사로잡힌 Sarty의 불편한 혈연관계,
Sarty의 혈연과 결연 사이 갈등이 핵심이다.
1. 두가지 관점.
소설의 Narrator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Abner 중심으로 폭력적인 태도를 보느냐, Sarty 중심으로 성장에 주목할 것인가'가 그것이다(신형헌).
1) Abner 중심이라면,
Abner가 왜 반복적으로 헛간을 방화했는가에 관심(Charles Mitchell)을 가지도 하고,
Abner를 악마의 나타냄으로 보고, 이야기를 바라볼(Willian Stein) 수도 있다.
2) Sarty 중심이라면,
소년의 성장(a boy's coming of age)에 관한 주장(Phyllis Franklin)을 펼 수도,
아버지에 대한 애착과 폭력에 대한 혐오 사이의 갈등에 초점(Michael Millgate)을 둘 수도,
Sarty가 가족과 인연을 끊는 상황에 관심(Gayle E. Willson)있게 바라볼 수 있다.
결정된 혈연과 절연의 자유의지 사이의 갈등(Jane Hiles)과 Sarty의 정서적 딜레마(Edmond Volpe)볼 수도 있다.
(뭐 다 같은 말처럼 들린다.)
2. 가족 중심의 접근
1) 포크너의 아이들 : Quentin, Caddy, Isaac McCaslin
포크너의 아이들은 모두 불안정하게 성장하고,
대부분의 아이들과 다르게 자란다는 점에서 사회과학 통계상의 의미 없는 점이다.
오히려 사회과학의 표준 분포 곡선을 벗어난 점,
장애인, 학교 밖 청소년, 부적응 학생, 날라리, 결손가정들이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점이기도 하다.
Vanderwerken은 포크너를 'the poet of the crippled childhood'라고 말한다.
포크너는 사회를 형성시키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단위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딸내미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던 이야기다.
고리타분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50년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한 포크너의 이력을 보면,
가족에 대한 관심은 충분이 이해가 간다.
포크너는 가족을 다루는 미국 최고의 소설가이다.....
대부분의 포크너의 인물들은 하나의 분리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집합적 단체이며, 가족 드라마의 과정이며 산물로서, 각각의 배우는 그 가족 드라마를 떠나서는 거의 이해될 수 없다.
Faulkner is the premier American novelist of family.....
The bulk of Faulkner’s people are not so much single, separate persons as collective enterprises, the products and processes of family dramas apart from which the individual actor is scarcely intelligible. (Kartiganer)
포크너의 가족은 안식처가 아니다. 가족 간의 사랑은 물론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들의 가족은 절망적이고, 괴팍하고, 알코올 중독이거나 능력이 없다.
아이는 경제생활을 유지하는 노동력을 위한 생산도구이거나 성적 욕구의 산물이다.
가족이 가족 구성원을 따뜻하게 보살펴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1차 사회로서의 가족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하품).
2) Sarty의 성장
재판은 가게 안에서 이루어지고, 치즈 냄새, 그 밖의 많은 냄새들이 난다.
위장이 냄새나는 통조림의 상표를 읽는다.
재판은 Sarty의 굶주림과
'오랫동안 거칠게 그의 핏 솟을 흘러온(the old fierce pull of blood) 절망과 비애(23)'의 현장이었다.
He aims for me to lie, he thought, again with that frantic grief and despair. And I will have to do hit(25).
혈육이라는 이유로 거짓말에 대한 자신의 처지에 슬픔과 절망을 느낀다.
Abner는 가족 이외의 모든 사람은 적으로 간주한다.
"... 이런 인간들이 사는 마을엔 나도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외부로 돌리며, 가족의 일치감 요구하고 있다.
엄마 Lennie의 무력감은 절망을 더 깊게 할 뿐이다.
아빠 Abner의 "앉아 있어", "그냥 타고 있으라니까."에 그대로 엄마는 앉아 있는다.
Sarty의 성장의 계기는
드 스페인의 저택, 법원 같은 저택.. Hit's big as courthouse he thought quietly (32)이었다.
Sarty에게 그의 집은 법원과 같았고, 평화와 위엄(pease and dignity)이 있는 곳이었다. (32)
Abner의 협박과 폭력에도 끄떡 없는 곳이 드 스페인의 저택이었다.
Sarty는 드 스페인의 주택을 보며, 아빠의 변화를 기대한다.
이제 저 사람도 뭔가 느끼게 될 거야. 어쩔 수 없이 그 짓을 저지르던 그도 이제 변하게 될 거야.
(Sarty, 변하겠냐....)
Abner는 눈치가 빠르다. 아들이 드 스페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며, 저택을 폄하한다.
"예쁘고 하얗군, 그렇지?" 그가 말했다. "저건 땀이다. 저 깜둥이의 땀...."
이를 계급투쟁의 기반인 이데올로기의 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Abner의 발언이 아들이 떨어져 나갈까 봐 조마조마하는 맥락에서 나왔으며,
앞서 "비켜, 깜둥이"라는 말은 계급투쟁의 용사로서는 탈락이다.
그리고 Abner가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전리품이었으며,
짐승의 굽은 발톱(11)을 가진 악마의 형상이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계급과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안 맞는다.
Sarty의 진일보한 성장은 거짓말로 시작한다.
".... 그 사람은 절대 20부셀을 못 가져갈 거예요! 한 움큼도 못 가져갈 거라고요!..."(39)
라고 아빠에게 말한다.
하지만, 양탄자 값으로 20부셀이나 떼는 건 너무하지만, 아버지가 해온 짓을 영원히 멈추게 하는 값으로는 오히려 싼 셈이야.(40) 다 찢어 버릴 거야. 영원히, 영원히 끝나 버릴 거야.(40)라고 생각한다.
Sarty의 한층 더 진일보한 성장은 행동으로 옮긴다.
제의적인 폭력을 준비하는 아빠(44)를 바라보며, 핏줄이 시키는 데로 몸이 움직인다(45) 기름통을 건넸다.
그리고 "깜둥이도 보내지 않으실 건가요?"라고 대든다(45)
이에 대한 대가로 Abner의 지시로 엄마에게 잡힌다.
아빠는 사실 가족 외 모든 사람이 적이 아니라, 자신 이외에 모두가 적이다.
무기력한 레니에게 사티를 잡으라고 한 여러 이유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냥 클 만큼 큰 Sarty를 보여주는 배경화면처럼 느껴진다.
이모, 쌍둥이 누나는 배경화면의 귀퉁이 정도...
(참 형은 아빠옆에 서 있어. 가족사진 찍어야지.)
드 스페인 저택으로 가서, 방화의 위험을 알린다.
(두발의 총성)"아빠! 아빠!"... (흐느낀다)"아버지! 아버지!"
Abner가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집을 등지고 어두운 숲을 응시하는(48) Sarty에게는 Abner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 he knew it was almost down. the night almost over...
이제 빛이 열린다.
3. 우리들 이야기
빨간 머리, 판자촌, 춤바람, 식칼, 뱀 넝쿨, 일상화된 거짓, 하우스, 꺾기, 경마장, 흥신소, 아들 보험으로
허가 없는 굿 한판(미친 짓)을 할까 하려다 멈추었다.
2017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 22,367건 중 17,989건이 가정에서 일어남. 전체의 80% 정도.
학대 행위자 중 재학대를 하는 가해자의 비율도 부모가 가장 높음. 95% 정도
부모에 의해 발생한 아동학대는 전체의 76.8%(17,177건),
이 중 친부에 의해 발생한 사례가 9,562건(42.8%), 친모는 6,824건(30.5%),
계부와 계모는 각각 401건(1.8%), 341건(1.5%) 순으로 조사됨.
Sarty, 나만 그런 거 아니란다.
Abner, 가끔 연락하면서, 떨어져서 잘 살자. 안 버릴게. 네가 젤 불쌍해.
PS
이창동의 「버닝」은
겉은 하루키의 소설을,
안은 포크너의 것을 더 많이 가져온다.
벤과 그는 해미와 판포마임 연기자를 살해하고,
Sarty는 드 스페인씨를 통해 종속살인를 사주한다.
종수는 계획적으로 직접 저택의 주인을 살해한다.
Sarty는 숲의 어두운 곳을 바라보며,
종수는 벌거벗은 몸으로 새벽을 가른다.
이제 새로운 비극이 막 시작되었다.
참고
기능장애 가정에서의 사티의 성장
https://nccktheology2019.tistory.com/143
아동학대범은 얼굴에 뿔난 사람이 아니다 / 김예원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코로나19로 인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강제되면서 불길한 예감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가정에만 있으라.’는 사회에서, ‘가정이 지옥보다 ��
nccktheology2019.tistory.com